제목: 할머니의 기억은 어디로 갔을까?
(원제: Wilfrid Gordon McDonald Partridge)
그림: 줄리 비바스
글: 멤 폭스
발행일: 2009. 2. 13
출판사: 키득키득
서평: 서정숙(한국어린이문학교육학회 회장)
최근 유아교육기관이나 도서관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유아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이 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유아와 노인이 비록 연령차는 크지만 세대차를 뛰어넘어 공감대를 이루는 지대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할머니의 기억은 어디로 갔을까?」는 윌프리드 고든 맥도널드 파트리지라는 아이가 양로원에 사는 96세 할머니와 나누는 특별한 우정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으로, 어린 독자들과 ‘양로원’, ‘조부모’, ‘노인’, ‘기억에 남는 것’ 등에 대해 생각을 나누며 감상하면 좋을 것 같다.
아이의 옆집에는 양로원이 있다. 아이는 양로원의 할머니 할아버지 한 분 한 분 모두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낸시 앨리슨 델라코트 쿠퍼 할머니를 가장 좋아한다. 그 할머니를 좋아하는 이유는 매우 아이답다. 자기랑 마찬가지로 이름이 네 마디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낸시 할머니가 기억을 잃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는 낸시 할머니의 기억을 찾아주기로 한다. 기억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을 찾는다는 것은 이야기 소재로는 아주 추상적이다. 그러나 아이는 또 아이답게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아이는 양로원의 여러 할머니 할아버지께 기억이 무엇인지 묻고, 그들이 답한, ‘오래된 것’, ‘웃게 만드는 것’, ‘울게 만드는 것’, ‘소중한 것’, ‘따뜻한 것’을 찾아 나선다. 아이에게 오래된 것은 지난 여름 바닷가에서 주운 소라랑 조개껍데기이고, 아이를 웃게 만드는 것은 꼭두각시 인형이고, 울게 만드는 것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주신 메달이고, 아이에게 소중한 것은 축구공이며, 따뜻한 것은 닭이 방금 낳은 따뜻한 달걀이다. 아이는 이렇게 찾은 자신의 기억들을 바구니에 담아 낸시 할머니에게 보여주었고, 이를 본 할머니는 이것들로부터 자신의 기억을 하나씩 건져 올린다. 아이가 가져온 따뜻한 달걀을 손에 쥔 할머니는 언젠가 작은 새알을 발견했던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소라껍데기를 귀에 대고는 어린 시절 바닷가에 갔을 때를 떠올렸고, 메달을 만질 때는 전쟁 나간 오빠의 죽음에 대해 들려주었고, 꼭두각시 인형을 볼 때는 여동생과의 행복했던 추억을 들려준다. 마지막으로 아이의 소중한 축구공을 던지면서 할머니는 아이를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해낸다. 낸시 할머니는 아이 덕분에 자신의 삶에서 의미 있는 순간들을 되찾게 된 셈이다.
이 그림책으로부터 얻는 즐거움은 여러 가지이다. 기억이라는 추상적인 언어가 ‘오래된 것’, ‘웃게 만드는 것’, ‘울게 만드는 것’, ‘소중한 것’, ‘따뜻한 것’이라는 매개 언어를 통해 세대 간에 서로 다른 구체적인 물건이나 사태로 환기되고 그 결과 낸시 할머니가 기억을 찾는 데서 느끼는 감동은 이 그림책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등장인물 간에 나누는 따뜻한 시선이나 긴밀한 신체적 접촉, 그리고 그것들과 밝은 색조가 이루는 조화를 보는 것 또한 이 그림책으로부터 얻는 즐거움이다. 그리고 아이가 가져온 물건을 보기 시작한 낸시 할머니의 모습을 담은 작은 그림은 영화에서의 플래시 백 기법처럼 할머니가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시작하는 의미를 줌으로써 영상미를 느끼게 하는 신선한 장면이다. 할머니가 아이의 축구공을 만지면서 아이와 처음 만났던 소중한 순간을 떠올리는 장면 역시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마치고 현재 상태로 순간 이동한 모습을 표현하고 있어 매력적이다. 다만, 원제인 Wilfrid Gordon McDonald Partridge(윌프리드 고든 맥도널드 파트리지)는 아이와 낸시 할머니가 공통적으로 네 마디로 된 이름을 갖고 있으므로 서로 깊이 공감할 만한 사이라는 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우수한 제목인데, 우리말로 그대로 옮길 수 없는 한계 때문에 아이의 관점만을 취한 제목, ‘할머니의 기억은 어디로 갔을까?’로 바뀐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