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위대한 탈출
(The great escape from city zoo)
토비 리틀 글, 그림 / 신윤조, 이명희 옮김 (1997/2008)
출판사: 마루벌
서평: 강은진
(숭의여자대학 유아교육과 전임강사)
2005년 여름 ‘마다가스카(Madagascar)’라는 애니메이션이 개봉된 적 있다. 뉴욕 센트럴파크 동물원의 스타 4인방, 사자, 기린, 하마, 얼룩말이 남극으로 탈출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펭귄들의 꾐에 빠져 우연히 동물원을 탈출해 거리를 활보하다가, 동물원에 붙잡혀 ‘마다가스카’에 도착하게 된다. 정글에 사는 동물이지만 한 번도 도시 밖을 나선 적 없는 네 동물들은 정글에서 탈출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내용이 유머러스하게 그려지고 있다.
토비 리들의 ‘위대한 탈출’은 이보다 훨씬 전에 만들어진 그림책으로, 야생동물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는 야성을 잃어버린 동물들, 그리고 그들의 탈출을 작가는 마치 ‘○○○ 탈출’ 류의 영화와 같은 긴박감을 차용해 유머러스하게 다루고 있다. 그림책의 그림이 흑백(black-and-white)인 까닭도 작가가 토요일 오후 영화(saturday-matinee movie)와 같은 효과를 주기 위해 배려한 장치이다.
이 그림책은 여러 장면에서 다른 문화 산물들을 패러디하고 있다. 동물원의 삼엄한 경비를 피해 탈출하고 있는 개미핥기, 코끼리, 홍학, 거북은 ‘○○○ 탈출’ 류의 영화 포스터를 연상시킨다. 그뿐만 아니라 도시로 탈출해 거리를 활보하는 네 동물이 걷는 거리는 비틀즈의 「Abbey Road」앨범의 자켓을 패러디하고 있다. 이 자켓은 텔레토비에서도 패러디된 바 있는 있다. 이 외에도 동물들이 탈출해 보는 영화가 ‘킹콩’이라는 점, 그들이 관람한 미술관에 걸린 그림이 초현실주의자인 Giorgio de Chirico 와 René Magritte 의 작품이라는 점, 유일하게 탈출 후 잡히지 않고 있는 홍학의 행방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네스호의 괴물’ 사진이나 라스베가스의 ‘플라밍고 카지노’를 보여주는 그림 등은 이 그림책의 독자가 어린이만은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켜준다.
또한 이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대비를 이루며 유머를 전하기도 한다. 이야기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듯한 평범한 모습의 동물원에서 시작된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정지된 듯한 도시 한가운데의 동물원. 그러나 글에서는 “얼마 전부터 동물원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무언가 심상치 않습니다” 라며 독자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두 번째 유머는 이 그림책의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보름달이 뜬 어느 날 밤, 모두가 잠든 사이 코끼리, 홍학, 개미핥기, 거북이는 동물원의 담을 넘는다. 다음날 그들은 ‘새처럼 자유롭게’ 사람처럼 변장을 하고 도시로 나선다. 하지만 그들이 도착한 도시도 그들에게 자유로움을 주지는 못한다. 네 명의 동물들은 도시로부터 점점 벗어나 언덕 위에 자신들만의 보금자리를 만들기도 하지만, 그 마저 실패로 돌아가고 다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국경을 넘어 가려고 시도하게 된다. 어디까지 가야 그들은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마치 우리의 삶을 비유하고 있는 듯하다.
마지막 유머적 장치는 이 그림책의 끝부분에 있다. 왼쪽 페이지에는 험난한 산등성이에서 한쪽 다리를 앞으로 내민 채 고독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홍학의 모습이 롱숏으로 그려지고, 오른쪽 페이지에서는 여러 갈래의 이야기 중 “이 이야기가 동물원에서 있었던 ‘위대한 탈출’ 사건을 사실 그대로 가장 정확하게 기록한 것입니다”라며 작가는 판타지 그림책에서 이 이야기의 리얼리티를 주장한다.
이제 그림책은 어린이만의 전유물이며, 대중문화의 산물과는 구별된다는 생각은 바뀌고 있음을 이 그림책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참고: Tohby Riddle Web Site, http://www.tohb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