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아트리체알레마냐 글.그림/곽노경 옮김
발행일 : 2008년 10월 10일
출판사 : 한솔수북
서평 : 오연주(대림대학 유아교육과)
작가인 베아르트알레미냐가 “오래된 노란 강가지 인형을 마음속 깊이 간직한 어른들에게 이 책을 드린다”고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형식은 어린이 그림책을 빌고 있지만, 어른을 위한 책으로 볼 수 있겠다. 어른들 앞에 어린이의 세계, 어린이의 생각을 펼쳐 보이는 목적에는 그림책의 형식이 다른 형식에 비해 보다 더 친숙하기 때문에 효과적이어서 그림책 형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예측해본다.
‘어린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정리 하게끔 하는 책이다. 어린이로 행동하던 지난날을 반추하며, 저 먼 기억의 창고에서 빛바랜 사진첩을 찾아 한 장씩 넘기며 아하!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내가 어릴 때는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했었던가? 누구나 갖고 있는 어린 시절 추억의 편린을 소중히 꺼내보며 입가에 걸린 미소에 흐믓함이 묻어나오는 책이 아닌가 한다. 새삼스레 놀라움으로 다가오는 나의 과거의 순진무구함과 천진난만함이 정갈한 언어와 그림으로 거침없이 펼쳐진 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아하! 나의 아이는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어쩌면 우리 아이에 대해 이리도 무지했을까?”, “우리 아이의 눈높이를 잘 이해해야 되겠다!” 하는 깨달음은 어쩌면 이 책을 읽으면서 얻는 큰 교훈이 아닐까?
빨리 어른이 되어서 마음대로하고 싶었던 어릴 적 생각이 떠오른다.
“어른이 되니까 마음대로 하는 건 너무 힘들어!”, “어른들은 깜깜한 데서 자고 싶어 해요.”, “콧속에 비누가 들어가도, 정말 울어야 할 때에도 들릴 듯 말듯 나직이 흐느껴요”, “흐느낌이 하도 작아서 어린이는 눈치 못 채요”, “글쎄요, 못 본척하는지도 모르지요”
아이가 서슴없이 뱉어내는 말은 어린이가 보는 어른의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 이해의 거리는 이미 과거를 잊고 살아가는 어른들이 보는 어린이의 이해하기 세계만큼의 거리를 역설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지 않을까? 빨리 어른이 되어서 맘대로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고, 숙제 안해도 되고, 늦게 잘 수도 있고, 늦잠도 잘 수 있을 것이라는 동경에 어린이를 빨리 벗어나고만 싶었던 해맑은 그 시절이 자꾸만 그리워진다.
“어린이는 정말 스펀지 같아요. 무엇이든 다 빨아들이니까요.”, “한 동안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지요.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밖으로 쏟아내요.”
아이에게 일상 속에서 내가 하고 있는 말, 몸짓이 아이에게 스펀지처럼 흡수되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밖으로 쏟아낼 때를 떠올려보면 어른인 나의 언행이 조심스럽다. 세상의 모든 궁금함을 하얀 백지 위에 그려나가는 아이들에게 난 어떤 색의 물감을 주었는가? 아이가 원하는색의 크레파스를 주는 것을 놓치지는 않았는가? 아이의 모델로서의 어른임에서 오는 무게감이 새삼 옷깃을 여미게 한다.
“어른이 되기 싫은 아이들은 언제까지나 어린이로 남을 거예요.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비밀을 마음속에 남겨 놓지요. 그런 다음에 어른이 되면 아주 작은 것 하나만 보아도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지요. 아침 햇살이나 흰 눈송이처럼 말이에요. 어린이는 생김새도, 마음씨도 하고 싶은 것도 다 달라요. 어린이는 그저 어린이일 뿐이에요. 지금은 잠들 때 따스한 눈길로 바라봐주고 이부자리 옆에 부드러운 불빛만 비추어주면 되지요.”
작가는 어른의 역할은 어린이는 어른이 만든 모델로 키워가는 것이 아니고, 정답은 “아이가 잠들 때 옆에서 따스한 눈길로 바라봐 주고 이부자리 옆에 부드러운 불빛만 비추어주는 역할”이라 제시하고 있다. 어린이가 어떤 존재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 아이의 인생에 지나치게 깊숙이 관여하는 것 보다는 옆에서 아이가 성장해 가는 모습을 사랑으로 지켜보아주고 한결같이 지지해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깨달음과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유리알 같은 낱말과 그림에서 그 동안 잊고 지냈던 아득한 우리의 어릴 적 기억들을 되돌아보며 행복한 시간을 갖게 해준 작가에게 아낌없는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