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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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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다비드 칼리
그림: 세르주 블로크
안수연 역
출판사: 문학동네어린이
발행일: 2008년 7월 출판
김민화 서평(한북대학교 영유아보육학과 교수)






가슴에 하나 가득 훈장을 달고 경례를 하고 있는 사람의 표지 그림을 보고 아이가 물었다.
“이 사람 히틀러야?”
아이가 “적”이라는 단어로 떠올린 사람은 히틀러처럼 역사적으로 악명이 높았던 인물인 것으로 보였다.
나라면 어땠을까? 내 어린 시절에는 어땠나? 김일성을 떠올리진 않았을까?

목 뒤에 큰 혹을 단 인민복차림의 살찐 돼지로 이미지화 되었던 김일성은 전쟁을 일으켜 아무런 죄 없는 사람들을 학살했고, 북한 동포들을 굶주리게 하면서도 오직 목적은 적화통일 밖에 없으니 우리는 반공에 힘써야 한다고 교육받은 것이 우리들 세대이다. 또 매학기 끊이지 않고 열린 것이 반공웅변대회! 단상에 선 아이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절규하면 우리들 청중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뭐가 뭔지도 모른 체 어른들에 의해 요청받은 적대감과 분노, 그리고 정의로운 반공을 가슴에 담으며 전쟁이 무엇인가를 이해했다.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우리와 같은 전쟁과 적의 이미지는 없다. 먼 나라 이야기처럼 전쟁이야기를 듣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세대와 지금세대 아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전쟁을 “좋은 사람-나쁜 사람” 또는 “적-아군”의 싸움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전쟁은 나쁜 사람이 일으킨 것이고, 그에 대응하여 좋은 사람들이 정의로운 반격을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아이들에게 전쟁에 얽혀있는 복잡한 이데올로기들을 어떻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전쟁을 어느 한편을 비난하는 것이 아닌 전쟁자체를 비판하도록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다비드 칼리와 세르주 블로크의 <적> 이야기는 아이들 눈높이에서 전쟁에 얽혀있는 복잡한 이데올로기를 쉽고도 명쾌하게 풀어나가고 있어 우리의 심각한 고민의 무게를 덜어준다. 이들의 이야기는 황량한 들판에 만들어진 구멍 두개로 시작된다. 두개의 구멍은 전쟁을 위해 파 놓은 참호가 되고, 두개의 참호 안에는 각자의 적이 서로를 겨누고 있다. 서로는 연기를 피우다간 그대로 공격당할까봐 밥도 먹지 못한다. 적이 독을 풀어 놓았을까봐 물도 마음 놓고 먹지 못한다. 전투 지침서에는 적의 사악함에 당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쓰여 있다. 서로의 적들은 이 지침을 따르면서 견디어 나간다. 시간이 지나면서 배고픔, 외로움, 죽음의 공포를 견디지 못한 적들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 서로를 기습공격하기로 한다. 하지만 상대방의 참호에서 가족사진을 발견하고 적도 나와 같이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게 했던 전투 지침서... 적도 자기와 똑같은 지침서를 가지고 전쟁을 견디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적은 인간이 아니다.”
우리가 북한군을 포악한 늑대, 게걸스런 돼지로 그리고 있었던 것과 같이 상대에게 우리 또한 그렇게 그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아이들도, 탈레반의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 분명 우리가 먼저 그런 생각을 해낸 것은 아닌데...누군가 조작한 전쟁의 당위성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인 우리의 삶은 어떠했는가? 그리고 현재는 어떠한가?

참호 바깥으로 나와 자신과 상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병사들처럼 자신을 포획하고 있었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바깥쪽 시선으로 우리의 삶을 들여다본다면 전쟁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적>은 우리에게 그럴 필요성과 또 그렇게 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이제 상대방의 참호에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된 병사들은 적에게 진실을 알리고 조작된 전쟁을 끝내고자 한다. 이 마음은 각각의 입장에서 “적과 아군”인 두 병사에게 있어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을까?
이야기는 그래서 이제 평화를 찾아왔다는 상투적인 결말을 내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도 전쟁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뒤 면지에서는 앞쪽 면지에서 지면을 빽빽하게 매우고 있던 병사들 중 두 명의 자리가 비워져 있다. 두개의 빈자리는 전쟁의 허상을 깨달은 사람들의 자리가 아닐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가두어두었던 참호 속에서 빠져나와 전쟁이 무엇인지, 적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면지 속 빈 공간은 더 많아지지 않을까? 뒤 면지에,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에 총을 든 병사들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그런 세상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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