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김의숙
출판사: 시공주니어
출판일: 2008년 3월 1일
서평:정대련
(동덕여대 교수, 한국어린이문학교육학회 회장)
달콩이가 장난감으로 방안을 “어지럽히고 있었어.”
유아는 어려도 자신이 실질적으로 내지는 도덕적으로 또는 거의 본능적으로 어떤 수준 또는 어떤 형태의 일(짓)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느끼거나 잘 알고 있습니다.
“쳐다보지도 않고” “퉁명스럽게” 달콩이는 말했지.
방을 어지럽히는 일은 결코 칭찬받을 일이 아님을, 그리고 당연히 책임과 뒷수습이 필요한 수준임을 유아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난 몰라.”
이제 막 제 소견을 가지게 된 4살 남짓 어린 친구들 입에서 대책 없이 쏟아져 나오는 말 중에 하나입니다. 뒷정리나 청소가 ‘귀찮음’을 ‘알아서’라기보다는, 그런 일을 스스로 하지 않아도 크게 책임감 느낄 필요가 없는 어린 유아이기 때문이거나, 아직 그런 일을 제대로 수행할 힘이 없어서 엄마가 매번 도맡아 하다 보니 자신의 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주인공 달콩이는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림책 작가는 달콩이가 회피하고 있음을 표정 담긴 대답으로 내비칩니다.
“달콩이 어디 있니?” “달콩이는 놀러 나갔나 보구나.” 엄마는 달콩이를 본 척도 안했어.
유아의 놀이에 자연스럽게 그리고 기꺼이 참여하는 어머니가 있는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아기들이 까꿍놀이 하듯, 하얀 달걀귀신 보자기를 머리에 쓰고서 제 눈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면 아예 자신의 존재 자체가 없는 것처럼, 하얀 보자기를 둘러쓰고 제 눈에 바깥이 보이지 않으니 밖에서도 자기를 볼 수 없으리라 생각하는, 자기중심적인 유아의 시점 때문에 가능한 장면입니다. 보여도 안 보이는 척, 들려도 안 들리는 척, 어머니가 유아의 달걀귀신 놀이에 가담하게 되면, 유아는 어느새 환상세계 속 보이지 않는 달걀귀신이 되어 더욱 신이 납니다. 어떤 대상을 천 등으로 덮어서 눈에 보이지 않아도 사물의 존재는 그대로 남아 있다는 대상영속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유아는, 달걀귀신 놀이에 몰입하자 보자기에 가려진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타인의 눈에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고 확신해 버리기도 합니다. 환상세계와 실제 세계의 경계가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귀신놀이 때문에 맛있는 밥 먹을 실제적 욕구충족의 기회를 상실하게 되면, 유아는 놀이 중에 자신의 감정을 대입하며 심통을 부리기도 합니다.
“난 몰라.” “뾰루퉁해져서” 대답했어.
그림책에서처럼 우리네 삶 속에는 달님과 대화 나누는 유아의 모습도 낯설지 않습니다. “달은 아주 아주 크고 뚱뚱해졌어.” “달걀귀신은 어디 갔는데?” “장난감 찾으러 네 배 속으로 들어갔어!”
현실과 환상세계를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유아의 말은 그 천진난만함으로 어른들을 즐겁게 하며 감탄하게 합니다. 달콩이의 말이 난처한 문제 사태를 모면하기 위한 계산된 답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아끼는 장난감이 보이지 않는 이유가 달님이 장난감을 삼켜 배속에 넣었기 때문이며, 그래서 달님이 자꾸자꾸 뚱뚱해진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요. 유아 나름대로의 직접 또는 간접추론이 어른들에게는 기발한 창의적 사고의 표현으로 들리는 것입니다.
“이건 내 거야.”
소유욕이란 단어를 붙이기엔 많이 어린 시기이지만, 양 손에 움켜쥐고도 또 하나 생기면 입에 하나 물고서 양 손을 다시 채우는 유아기입니다. 이미 환상세계에 깊숙이 빠져 든 유아는 달님이 자신의 장난감을 빼앗았다고 느낍니다. 장난감을 정리하지 않았던 죄책감이 달님의 개입에서 자책감으로 변질되고 마침내 자신의 것을 박탈당하는 느낌으로 남습니다. 결국 유아 내면 깊숙이 숨어 있던 긴장감과 자책감이 극에 달하고, 달님은 온 화면을 채우며 유아를 짓누릅니다.
거짓말을 하면 자꾸만 커지는 피노키오의 코처럼, 자꾸자꾸 뚱뚱해져 달콩이를 짓누르는 노란 달님. 노란 달님은 점 점 점 점 배를 불리며 “하하 하하하. 깔깔깔f” 수상한 웃음을 웃습니다. 믹 잉크펜의 『파란 풍선』처럼 조금씩 조금씩 커지다가 마침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팽팽해진 노란 달님. 극도의 긴장감으로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노란 달님입니다. 결국 마고할미의 엄청나게 큰 키를 보여주기 위해 첩첩이 접어 감춰 두었던 책갈피가 양 날개를 활짝 펼치며 ‘크다’의 감동을 그대로 전해 주듯, 그림책 작가는 한 순간 “펑!” 하고 달님을 폭발시킴으로써, 유아의 스트레스의 점진적인 증가와 해소의 과정을 한꺼번에 그려냅니다. 넓은 두 면에 사방으로 터져 나온 유아의 장난감과, “이건 내 거야.” 하며 이들을 품는 유아의 애착은, 유아의 욕망과 긴장이 해소됨을 보여주며, 마침내 해소된 긴장은 장난감을 정리하고픈 유아의 도덕적 자아에로 확장됩니다.
우리 할아버지, 아기 코끼리 덤보, 빨간 구두 등등, 그림책 세상의 캐릭터들이 쏟아져 나오는 장면들은 익히 알고 있는 그림책 캐릭터들을 알아채는 재미를 배가시킵니다. 짙은 민트색 면지, 화려한 색조와 동글동글 선 처리로 화사하게 주변을 장식한 환상세계, 살아 움직이듯 동적인 등장인물들의 구성 역시, 그림책 작가의 면모를 재발견하게 해줍니다. 작가 김의숙 선생님은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후, 이탈리아 밀라노 국립예술아카데미 브레라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하여 <디플로마 디 라우레아> 학위를 받았습니다. 김의숙 선생님은 1992년 볼로냐국제어린이도서전 공모전에서 선정작가, 같은 해 밀라노 <국립예술아카데미 브레라 살롱전에서 추천작가였으며, 그 후 여성가족부 주최 공보육캐릭터 공모전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그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 『달콩이는 어디 있니?』에서 작가는 여자어린이 달콩이와 엄마간의 심리적 갈등과 화해를 담으려 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환상과 실재를 넘나드는 천진난만한 달콩이의 모습을 통해 그림책의 보고 듣는 재미가 더 큰 작품임에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