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동화 속에 나타난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초상
-홍종의(2007)의 <똥바가지>를 중심으로-
이송은(부천대 겸임교수, 동화가 있는집 소장)
90년대 말 이후 국제결혼이 증가함에 따라 우리 사회에는 필연적으로 한국인 아버지와 외국인 어머니, 그리고 그 자녀로 이루어진 구조의 다문화 가정이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2006년 연말을 기준으로 국제결혼을 통해 우리나라에 체류 중인 결혼이민자는 93,786명 (남성 10,958명, 여성 82,828명)으로, 이 중 한국 남성과 외국 여성과의 결혼이 88.3%에 달하고 있다(법무부, 2006).
아동문학에도 이 같은 현상이 반영되어 최근 다문화가정과 그 어머니가 주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창작동화가 증가하고 있다.
<똥바가지>(홍종의, 2007)에 등장하는 필리핀 출신 어머니는, 군복무시 5월 광주 항쟁 때 사람을 많이 죽인 기억에 사로잡혀 가출한 남편을 대신해 식당일을 하며 가계를 꾸려 간다. 그녀는 똥바가지로 수시로 변소에서 똥을 퍼는 시아버지와 혼혈이라는 이유로 놀림을 당해야 하는 아들을 감싸 안고 살아가는데 늘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다.
엄마는 항상 불쑥 말을 해 놓고 쩔쩔맸다.
“망이, 엄마가 잘못했어. 빌게.”
엄마가 오도 가도 못 하고 긴 속눈썹을 깜빡거리며 두 손을 싹싹 비볐다. 망이는 이럴 때 엄마가 가장 싫었다……망이는 엄마와 닮은 발목이 싫어 한 여름에도 양말을 신고 다녔다.
“창피해 죽겠어. 무슨 엄마가 이래. 만날 잘못했다면 다냐?”
작품 속에서 그녀는 늘 부족하고, 아들에게도 죄인처럼 용서를 구하는 존재이다. 그녀가 유일하게 분노를 터뜨리는 대목은 폭력에 대해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나설 때이다.
엄마가 작은 고모를 물건 던지듯 구석에 확 밀쳐버렸다.
“가만 안 둬. 우리 망이 때리면 가만 안 둬.”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겁에 질린 작은 고모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작품의 첫머리부터 망이 엄마로 등장해 작품 끝 135쪽까지 그녀는 이름이 없다. 그녀의 성장에 관한 유일한 단서는 케손 섬 출신이라는 것과 친족들이 필리핀에 살고 있다는 정도이다. 그녀가 유일하게 희망을 발견하는 순간은 남편 몫의 유산인 땅을 둘러싼 시누이와의 다툼을 포기하고 이 땅을 떠나고자 결심하는 순간으로 그려져 있다.
“며칠 후면 비행기 타!”
엄마가 들뜬 소리로 말했다. 작은 고모에게 그냥 살게 해 달라고 두 손을 빌 때와는 달랐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엄마의 얼굴이 점점 밝아졌다. 엄마는 틈만 나면 망이에게 케손 섬 자랑을 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외할머니, 외삼촌, 이모들의 이야기가 실타래처럼 줄줄 이어졌다.
작품은 모자가 약간의 땅 판 돈을 지니고 함께 필리핀 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깊은 밤 공함에 도착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두 모자가 유물로 각각 품고 가는 아버지의 구두와, 남편이 철모로 썼던 똥바가지는 각각 ‘아버지의 부재’, ‘군사독재 및 도시화에서 소외된 빈곤층’을 상징하고 있다. 비록 대미를 장식하는 장면에서 모자가 하늘에서 ‘똥바가지별’, 즉 ‘북두칠성’을 발견하게 된다는 메타포가 등장하지만, 시종 차별과 학대와 모멸로 점철되었던 사건전개를 따라온 독자에게는 그 문학적 장치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제시해 주고자 하는 ’ 작가의 의도를 받아들기 쉽지 않다.
“엄마! 똥바가지별이야.”
망이가 소리쳤다. 나무 손잡이를 떼어 내고 가방 속에 담았던 똥바가지가 어느새 손잡이를 매달고 하늘에 떠 있다. ♠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었을까? 작품 속에서 외국출신 어머니는 어떤 역할, 어떤 의미로 작용하고 있는가?
몇 번을 곱씹어 읽어 봐도 이 작품은 한국의 여러 가지 병폐를 고발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작품 도입부에 등장해서 핵심적 아이콘으로서 끝까지 작품을 이끌고 가는, 이 작품의 타이틀이기도 한 ‘똥바가지’는 한 세기에 걸친 한국사를 극히 냉소적으로 관조하는 상징으로 기능한다.
‘똥바가지’는 의미 그대로 재래식 비료로서 현대 문명 이전의 과거를 나타내는가 하면, 5월 항쟁 때 진압군으로 참여한 아버지가 철모를 똥통에 쳐 박은 사건을 통해서 무수한 인명을 살상한 데 대한 사회적 죄책감을 투사해 보이고 있다. 게다가 아들이 행방불명 된 상태에서 똥 퍼는 일로서 아파트 단지 경비원과 대치하고 똥바가지 막대기로 손주를 혼내는 할아버지 모습에서는 누적된 적개심에 대한 집착마저 나타난다. 더 극단적인 결말은 후반부에 망이 엄마가 똥바가지를 윤이 나게 닦아 품고서 필리핀행 비행기를 타려 한다는 설정이다. 한국은 우울하고, 사람 살 곳이 못된다는 비관적 메시지와 쫓겨나듯 고국으로 엑소더스를 하는 나약한 외국 여성이 있을 뿐이다.
작품 서두에서부터 이름 없이 ‘망이 엄마’로만 등장한 그녀는 정신이상이 돼 가출한 음울한 남편을, 엄마가 외국인이고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 당하는 아들의 상처를, 시 아버지의 고통, 시누이의 모독까지도, 모두 감내하는 순하디 순한 숙명적 여자로 설정돼 있다.
‘주제’란 작품 전반에 흐르는 사고로서 구성과 등장인물로부터 뿜어져 나온다 (Cullinan & Galda, 2002). 이 책을 덮었을 때, 작품에 소개된 사건들과 그들의 구성, 등장인물들을 통해 아이들은 무엇을 품게 될 것인가?
아동문학이 현실과 동떨어진 행복만을 담아낸다면, 그것은 아동의 성장에 해가 된다. 모든 일이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거나, 어린이는 착하기만 하다는 천사동심주의의 환상은 이미 깨졌다. 그러나, 문학이 세상의 문제점을 치열하게 드러내는 데만 열중한다면, 그것 또한 매우 위험한 일이다. 등장인물들 간에 갈등이 있고, 해결이 있고, 또 비극적이든 희극적이든 결말을 통해 그 가운데 등장인물의 성장이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재미든, 감동을 통한 카타르시스든, 독자는 시간을 들여 책 한 권을 읽은 댓가를 지불받게 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 책에는 그 어떤 것도 발견하기 어렵다.
다문화 가정 아동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 일반 한국 아이들은 이 책을 통해 어떤 사고를 형성하게 될까?
다행히 최근작 들 중에서 원유순(2005)의 <우리 엄마는 여자 블랑카>에서는 인권에 눈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베트남 새 어머니가 등장하고, <마, 마미, 엄마>에서는 어머니가 명예교사로서 초대된다는 설정이 등장하지만 여전히 능력으로 인정받는 인물과는 거리가 멀고, ‘주류사회의 온정으로 부분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정도로 부각되고 있다. 문학은 한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며, 때로는 그 사회를 선도하기도 한다. 단순한 르뽀성 사건 전개는 가슴을 더 답답하게 하고 아프게 후벼 팔 뿐이다. 저린 가슴을 수습하며 되뇌여 본다.
‘아픔 가운데에서도 감동이 서려 있는 작품, 그를 통해 남과 나를 좀더 이해할 수 있는 작품, 싱싱한 생명력 있는 다문화 가정 어머니를 만날 수 있는 작품은 없을까…’
참고문헌
원유순 글, 원유미 그림(2005). 우리 엄마는 여자 블랑카. 중앙출판사
안미란 글, 윤정주 그림(2004). “마, 마미, 엄마”, <블루시아의 가위 바위 보>. 창비
홍종의 글, 이현주 그림(2007). 똥 바가지. 국민서관
Cullinan, B. E., & Galda, A.(2002). Literature and the child(5th ed.). Belmont: Wadswor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