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베스트 글
소피 블랙올 그림
노은정 옮김
비룡소, 2008.
한선아(목원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나에게는 이제 갓 두 돌이 된 아들이 하나 있다. “둘째는 안 낳으세요?” 라는 질문을 종종 받을 때마다 “아니요, 전혀.” 라고 대답을 하며 짐짓 의연한 척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왜 그런 고민이 없을까. 이런 나에게 이 책의 제목이 반갑도록 눈에 쏙 들어온 것은 어쩌면 당연하리라.
요즘은 모두가 외동 아들, 외동 딸이라고 할 정도로 아이 둘 이상이 있는 가정은 그리 쉽게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는 나의 주위에 있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직업을 갖고 있다는 특성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유야 어떻든 간에 많은 사람들이 둘째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한 해 두해를 보내고, 그러는 동안 나이를 훌쩍 먹어 이제는 더 이상 용기를 내지 못하고 아이 하나를 잘 키우는 것에 두 세배의 노력을 기울이기로 마음먹으며 스스로 위안을 하는 듯하다.
이 책의 주인공은 “로즈메리 엠마 안젤라 리네트 이사벨 아이리스 말론” 이라는 긴긴 이름을 가진 외동딸이다. 주인공의 이름이 이렇게 길게 지어진 데에는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아기가 태어나자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아빠, 엄마, 삼촌, 이모 등등 온 가족들이 서로 자기가 지은 이름을 이 귀하디귀한 아이에게 붙여주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이 가족들은 사랑스러운 로즈메리 엠마 안젤라 리네트 이사벨 아이리스 말론이 귀여워 어쩔 줄 모른다. 아이는 어른들의 눈과 손에서 놓여나는 일 없이 어야 둥둥 자라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로즈메리 엠마 안젤라 리네트 이사벨 아이리스 말론에게 역사적 순간(적어도 이 가족에게는 그렇다)이 발생한다. 바로 난생 처음 말을 하는 순간인데, 그 때 내뱉은 말이 바로 “긴 이름 싫어!”. 이를 계기로 주인공은 그간의 긴긴 이름을 벗어던지고 짤막한 이름 로즈메리로 불리게 된다. 세상 무엇보다 가장 귀한 외동딸이 원하는 것이라면 이름을 바꾸는 것쯤은 이 가족들에게 아무 것도 아니었으리라. 이 순간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는 로즈메리의 생생한 표정이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다.
로즈메리는 점점 온 식구들의 과한 애정과 관심이 짜증스러워진다. 그리고 말한다. “외동딸 노릇은 정말 힘들어.”
나이가 들며 식구들의 지나친 관심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여의치 않다. 급기야 동생을 낳아달라고 조르기 시작한다. 외동딸이 왜 나쁘냐는 어른들의 질문에 “몽땅.” 이라고 답하는 로즈메리. 로즈메리는 오빠와 여동생, 언니들이 있는 주위 친구들이 부럽다. 언니가 되는 꿈을 꾸기도 하고 가족들이 나오는 책도 읽고 인형들을 두고 상상놀이도 해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로즈메리의 외동딸로서의 외로움을 달래주지는 못한다.
로즈메리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주위의 외톨이들을 하나둘 씩 모으기 시작한다. 양말 하나, 단추 한 개 등등... 그 이후 거북이, 고양이, 토끼, 강아지, 새 등을 하나씩 하나씩 데려와 이름을 짓고 함께 살게 된다. 로즈메리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집으로 데려온 이 친구들은 시간이 되었다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도 않고 비밀 이야기도 나누어가며 행복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즈메리는 여전히 외동딸이다. 하지만 더 이상 외롭지 않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그럼 됐지요, 뭐. 안 그래요?”
마지막에 내뱉는 로즈메리의 한 마디는 읽는 이의 마음을 후련하게 한다. 그리고 위안을 준다. 한 쪽 눈을 찡긋거리며 당당하게 우뚝 서는 우리의 모든 외동 아들, 외동 딸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 순간 우리의 외동 아들, 외동 딸들은 어떤 외로움과 어떤 즐거움을 공유하고 있을까. 부모로서, 유아교육자로서 한 번 쯤 되새겨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