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존버닝햄
옮긴이: 조세현
출판사: 비룡소
서 평: 박상희(광주신학대학교 유아교육과)
이 그림책은 존 버닝햄의 작품이다. 이 말은 그 그림책이 결코 쉽게 읽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뜻한다.주인공은 예쁘지 않을 수 있으며 글속의 내용은 읽어주는 어른이 때로 당황스럽기도 하다.
‘셜리야..’ 시리즈의 그림책을 읽어주는 엄마들은 이야기를 읽어주는 동안 마치 본인이 그림책속의 잔소리꾼 엄마와 닮아있는 것을 느끼며 얼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반면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서 그림책속의 그림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독자인 아이는 존 버닝햄이 만들어 놓은 그림속의 환상적 공간에서 즐거운 여행을 한다. ‘지각대장 존’은 또 어떠한가. 그 작품을 제일 싫어하는 이는 물론 말할 것도 없이 이 땅의 교사들일 것이다. 선생님이 사각모를 쓰고 나오는 것을 보고 있으면 대학에 있는 나도 슬몃 불편한 맘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처럼 그의 작품 속에서 아이와 성인들은 ‘만나지 못한다’. 그의 작품 중에서 어른과 아이가 서로 교류와 이해를 하는 작품은 ‘우리 할아버지’정도일 것이다. 그나마 그 책속에서의 할아버지는 죽음을 앞두고 아이의 추억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다.
어른들은 끊임없이 아이에게 다그치거나 염려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며 아이들은 아이들의 세계에서 부유하며 갇혀있는 현실을 ‘불편하게’ 말 할 뿐,교훈을 주거나 어른들이 그들을 이해하고 다가가려고 하지 않는다. 섣부르게 ‘사랑하는 것을 확인’하거나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에드와르도..’는 기존의 존 버닝햄 작품의 정석과는 조금 다르다. 물론 다른 작품 속의 주인공처럼 에드와르도는 어른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사사건건 비난을 들었던 존재이다.그러나 우연히 정말이지 우연히 에드와르도가 그렇게 선한 행동을 하려고 하지도 않았는데도 ‘오해로’ 에드와르도의 못 된 행동의 결과를 선의로 해석한 -역시 존 버닝햄다운 장치이다-어른들의 칭찬으로 에드와르도는 사랑스러운 아이가 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에드와르도가 어른들이 정형화한 이야기의 방식대로 착한아이가 된 이야기라고? 그것이 아니란 이야기. 에드와르도는 여전히 때때로 말썽을 부리는데 어른들이 변했단 이야기이다. 고로 여전히 아이들을 보는 어른들의 일방적이고 편협한 시각과 태도를 그리고 있는 점에서 존 버닝햄 스러운 작품이면서도 ‘주제’를 불편하지 않게 드러내는 이야기의 전개가 새롭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어쨌든 비난과 질책으로는 아이들의 행동을 수정할 수 없다는 것,부정적인 내용을 강조하기 보다는 긍정적인 것을 언급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것,그런 다소 진부하지만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할아버지처럼 들려주는 그림책이라고 말 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