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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태 할아버지가 온다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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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그림 : 박연철

■ 출판사 : 시공주니어

■ 출판일 : 2007. 4. 10

■ 서 평: 서정숙(건국대학교 대학원 강사)

톨킨에 따르면, 판타지는 독자가 현실에서 벗어나 환상 세계를 경험함으로써 사실 세계에서는 알지 못했던 진실에 대한 통찰력과 심리적 위안을 얻고 현실 세계로 건강하게 복귀하도록 도와준다.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는, 꿈이라는 환상 세계를 경험한 아이가 불합리한 훈육으로 자신을 화나게 했던 엄마와 화해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림책이다. 엄마는 아이에게 꽃병을 깨놓고 왜 거짓말을 하느냐면서 벌세운다. 꽃병을 깬 것은 아이가 아닌데(그림을 보면 고양이의 소행으로 보임) 말이다. 엄마는 아이에게 밥 안 먹고 사탕 먹는다고 소리치고, 아홉 시만 되면 자라고 난리다. 그런 때 엄마의 표정은 무시무시하다. 이에 아이는 억울하다. 할 말도 많다. ‘난 엄마가 거짓말하는 거 열 번도 더 봤어’, ‘난 엄마가 밥 안 먹는 거 백 번도 넘게 봤어’, ‘엄마는 날마다 늦게 자면서 나한테만 뭐라 그래’. 마음속으로는 제법 논리적으로 엄마에게 대항해보지만, 그 때마다 엄마는 “망태 할아버지한테 잡아가라고 하겠다”고 위협한다(어른이 치사하게). 망태 할아버지는 나쁜 아이들을 잡아다 착한 아이로 만들어 등에 흰 도장을 찍어 돌려보내는 무서운 존재이다. 거듭되는 엄마의 협박에 아이는 드디어 화가 나서 소리친다. “엄마 미워!” 엄마는 엄마대로 소리친다. “당장 네 방으로 가!” 이로써 둘의 대화는 단절된다. 자기 방으로 들어온 아이는 분을 삭이지 못한 채 씩씩거린다. 그 때,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방문이 스르륵. 잠시 후 나타난 것은, 바로 ‘망태 할아버지’다. 망태 할아버지는 “너 잡으러 왔다!”하면서 검은 손을 뻗었고, 아이는 “엄마!”를 외친다. 그런데 정작 망태 할아버지가 잡아간 것은 아이가 아니라 엄마다. 파격적인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아이의 외침을 듣고 달려온 엄마는 이전과는 다르게 순한 표정으로 아이를 안는다. ‘자애로운’ 엄마 품에 안긴 아이는 엄마와 사과를 주고받으며 안심하는 표정이다. 아이는 망태 할아버지가 엄마를 잡아가는 꿈을 꿨던 것이다. 아이가 흘끔 본 엄마의 등에는 망태 할아버지가 남겼음직한 흰 도장 표식이 남아 있다.

환상 그림책이 한낱 헛된 망상에 그치지 않으려면 미학적 완결성을 바탕으로 그것이 주는 별도의 유익함을 지녀야 한다. 이 그림책은 현실 세계의 갈등(엄마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데 대한 불만, 엄마의 불합리한 처사에 대한 대항), 갈등의 고조 -> 꿈 속 환상 세계로의 이동, 갈등의 해소 ->현실 세계로의 안착, 순화된 정서의 회복이라는 판타지의 기본 틀을 잘 지킴으로써 환상 그림책의 기능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림책이 보여주는 환상의 질서에는 근본적인 취약점이 하나 있다. 환상 그림책 속 아이는 맞닥뜨린 현실에, 현실 속 갈등이나 존재에 대체로 무력하다. 그래서 그들은 환상의 세계로의 여행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환상의 세계에서 보상 받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해방감을 맛보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아가 건강해져서 돌아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미처 몰랐던 갈등의 실체나 자신에 대한 통찰력도 얻어 한층 성장하여 돌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그림책의 아이는 현실 세계에서 엄마와의 갈등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이미 자아가 커져가고(성장하고) 있다. 그림의 크기가 그것을 말해준다. 현실 세계에서 반복되는 엄마와의 갈등 상황에서 아이가 나름대로의 자아를 키워가고 있다면 구태여 환상의 세계로의 여행이 필요한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든다.

그림책 작가, 박연철은 작년에 나온 <어처구니 이야기>로도 이미 주목을 받았고, 이번에도 한국의 문화 속에서 그림책의 소재를 끌어올림으로써 개성 있는 작가로의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 더구나 글과 그림을 유기적으로 운용하는 면에 있어서 <어처구니 이야기>에 비해 진일보한 면을 볼 수 있어서 더욱 기대가 된다.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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