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진(성균관대 강사)
제르다 뮐러 글, 그림/ 한소원 옮김/ 파랑새/ 2007년 9월
어릴 적, 하얗게 눈이 내리고 난 다음 날 아침이면 누구보다 먼저 내 발자국을 남기고 싶었었던 일이 기억난다. 잠옷 바람으로 집 앞마당에 쌓인 눈 위로 슬리퍼 자국을 남기며 겅중거리면 강아지도 따라 껑충거렸다. 그러고 나면 앞마당은 나와 강아지가 뛰어다닌 발자국으로 가득해졌다. 마루에 앉아 발자국들을 보면, 내가 어디를 어떻게 다녔는지 강아지가 어떻게 뛰어다녔는지 떠올랐던 것 같다.
‘자, 발자국을 따라가 볼까요?’라는 글과 함께 시작하는 이 책은 글 없이 그림으로, 특히 발자국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따라가야 한다. 독자는 각 장면마다 찍힌 발자국을 통해 그 곳을 지나간 소년과 그의 개가 무엇을 하며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하여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책의 면지에서 보았던 소년과 개의 모습들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소년의 발자국은 화장실과 거실을 지나 개의 발자국과 합쳐지며 집밖으로 향한다. 소년의 발자국과 주변의 사물들이 놓인 모습을 보면서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자마자 몸을 씻고 옷을 입은 다음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나서는 바쁘게 집을 나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발자국은 다시 마구간을 지나고 개울을 지나 커다란 나무에 다다른다.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어지럽게 찍혀 있던 발자국은 다시 집으로 향하고, 소년과 개의 발자국은 어른의 발자국과 수레의 흔적과 합쳐진다. 아마도 소년이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장작을 해 오시는 아버지를 만난 듯하다. 소년은 아버지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고 발자국은 다시 집 안으로 향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는 드디어 발자국의 주인공인 소년과 개가 빨간 돛을 단 상자 배와 함께 등장한다.
독자들이 탐정이 되어 발자국과 집 안팎에 놓인 사물의 변화를 자세히 관찰할수록 이 책은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듯하다. 주인공 소년과 개의 발자국 외에도 새, 말, 오리 등의 발자국도 곁들여져 눈이 내린 겨울 날,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여러 동물들의 발자국을 알아보도록 확장해 보면 좋을 것 같다.